서평

[남독] 결혼학개론, 결혼 왜해요?

작삼심일 2021. 2. 5. 07:51

결혼학 개론, 벨린다 루스콤, Being

"오빠 나 임신했대." 인터넷에서 떠돌던 유머글에서나 듣던 이야기다. 이런 유형의 글들을 읽으면 정말 다양한 유형의 남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정말 내 아이 맞냐 라고 물어보는 사람부터 네가 안전한 날이라고 했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 우리 같이 잘 키워보자고 하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군상이 존재하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나중에 마지막처럼 멋지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짜로 내 귓가에서 맴도는 날에는 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앞서 말한 사람들처럼 나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사람처럼 멋들어진 청혼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은 밋밋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조금 밋밋할지언정 나의 진심과 책임감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한 말들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보잘것없던 나를 거두어준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남들처럼 계획적이고 철저함으로 무장된 결혼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많이 싸우고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나도 게임을 즐길 시간을 달라며 투정 부리고, 아내는 나와 시간을 보내지 않냐며 투덜거린다. 이런 작은 불화들은 진화하는 것은 대게는 나의 몫이다. 불씨가 꺼진 다음에 내가 갖고 있던 불만에 대한 분노에 맞추어진 초점이 점차 상대방의 불만 사항에 대한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내 아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벨린다 루스콤의 <결혼학개론>에서는 이런 결혼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상황들에 대해서 조금 더 전문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할까? 물이 담긴 대야에 아무리 칼질을 한다고 해서 물이 반으로 뚝 나뉘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의 물이 되기 때문에 그럴까? 오히려 요즘은 큰 싸움 이후에는 이혼이라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갈라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학개론>에서는 이런 부부싸움도 중요한 기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관계 연구 분야의 대부인 존 가트맨의 말을 빌리자면 "부부 사이에 '경멸, 비난, 방어적 태도, 비협조적 태도(가트맨은 이 네 가지를 두고 '묵시록의 네 기사라 부른다')'가 보이면, 그 부부는 헤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했다. 즉, 자신의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상대방이 되고 자신에게 문제점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방어적이게 되면 관계는 결국에 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칼로 물을 베는 듯이 싸워야 할 것인가? 부부 사이의 관계가 정말 좋지 않아서 갈라서게 된다면, 오히려 참고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결혼학개론>에서는 어느 정도는 같이 지내는 편이 더 좋다고 말한다. (물론 정말로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4번 이상 강조하고 있다.)

645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결혼생활에 불만을 느낀 부부들을 5년 뒤 다시 확인했을 때, 이혼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이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지 않았다. 반면 이혼하지 않은 부부들은 5년 전에 있었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경우에도 이혼하지 않은 사실에 만족해했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부부의 34퍼센트는 과거 특정 기간 그들의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혼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중 92퍼센트가 이혼하지 않고 현재 부부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때로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한다. 2016년 연구 자료를 보면, 이혼 소송 절차를 밟고 있는 부부를 조사했더니 그중 25퍼센트는 이혼에 확신이 없었고, 8퍼센트는 아예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학개론, 274p

이처럼 결혼생활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이혼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당장은 보기 싫은 사람일지라도 오랜 기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고, 헤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오랜 기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당장 차오른 분노와 들끓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결혼학개론>에서는 잘 싸우는 법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준다. 핵심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서로의 안전지대를 확보해주며, 사람이 아닌 문제에 집중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으니 뜬구름 잡는 이상론자의 말 같지만 적어도 하나의 말은 기억하며 싸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부부싸움의 승자는 없다." 부부싸움에서는 승자를 가릴 필요도 없고, 승자를 가릴 수도 없다. 싸움의 끝에는 결국 서로에 대한 배려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결혼 왜 해요?

결혼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대학생활 내내 꿈꿔왔던 독립된 삶을 제공했고(오히려 지금은 부모님 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하다. 아이를 돌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드디어 여자 친구가 집에 가지 않아도 되고, 나와 아내를 반반 닮은 장난기 가득한 아이와 함께 있고,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반듯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또한 긴급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들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때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부모님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결혼이라는 것은 핑크빛의 하루들로 가득 찬 생활은 아니다. 어떤 날은 무료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기쁘고 즐겁지만, 어떤날은 서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지옥 같은 날도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나의 배우자를 알아간다는 기분으로 작은 감정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동안 살아온 어떤 날보다도 많이 남은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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