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독] 오리진, 흐름출판, 루이스 다트넬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루이스 다트넬, <오리진>, p391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등 역사에 대한 수많은 격언들이 존재한다. 인류사에 있어서 유사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과거의 국가 간의 관계를 통해 미래의 일을 계획해 나가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는 고작 인류의 역사가 쓰인 시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 멀리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판의 활동, 지구의 궤도와 자전축 기울기에서 일어나는 규칙적인 변화(밀란코비치 주기) 같은 유사를 넘어선 우주적 기록 또한 과거의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미래의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루이스 다트넬의 <Origins>는 이러한 역사와 인류의 역사 사이의 연관된 부분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와 닿았던 부분은 “호모사피엔스는 왜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는가?”, “유목민족과 정착민들의 갈등은 왜 일어났고, 지금은 볼 수 없는가?”, 그리고 “지역마다의 특색은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이었다.

호모사피엔스는 왜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나?

영장류 중 인간이 속한 호미닌이라는 가지의 시초는 44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있는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인간의 세포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을 통해서 전달되는데, 유전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보면 인류의 최초의 어머니는 아프리카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는 인류의 기원은 대부분 아프리카 대륙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인류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이는 지구의 지각활동과 연관이 있다. 이전에는 울창한 숲을 이루던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다른 지역보다도 더욱 건조해져서 숲을 잃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지구의 우주적 움직임(지구의 공전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에 의해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것 중 빙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오리진>에서는 호미닌의 지능의 진화는 급변하는 자연환경에 맞선 호미닌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한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대한 설명

 

유목 사회와 농경 사회의 갈등은 왜?

유라시아 대륙에는 다양한 농경 사회가 뿌리를 내려 터전을 가꾸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경작하기 좋은 조건의 지역에서만 정착민들이 살아가고 나머지에는 또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북쪽의 추운 타이가 기후대와 남쪽의 사막 지역의 사이 광대한 초원 지역인 스텝(steppe)이 있다. 이 지역은 농경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기엔 강수량이 적어 개간하여 농사를 짓기 적합하지 않았고, 또한 나무가 살아가기에도 너무 건조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는 건조한 곳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풀들이 많이 자랐다. 이런 광활한 벌판은 특히 ‘말’이 살아가기 완벽한 서식지였다. 따라서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게 된 유목 사회의 민족들은 말과의 공존을 통해 살아남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가축화가 되었고, 점차 말을 통제하고 타는 법을 터득하고 양과 소와 같은 새로운 초식 포유류 종들을 가축화하며 드넓은 벌판의 무의미한 자원들을 고기와 젖이라는 유용한 에너지 원으로 변환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빠른 기동성을 기반으로 스텝 지역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생존해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광활한 벌판을 갖는 스텝 지역이라 하더라도 점차 거대해지는 유목 사회의 구성원 무리를 감당하기는 어려워졌고, 책의 표현을 빌려 “당구공이 서로 충돌하듯이” 연쇄적으로 혼란의 물결이 퍼져나가 결국 농경 사회의 영토를 침범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의 생활방식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농경 사회는 농사를 기본으로 하여 특별한 환경이 조성된 지역에서만 생존이 가능했고, 유목 사회는 막대한 수의 말과 가축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초원이 있는 장소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유목 사회는 풍족한 삶의 터전을 가진 농경 사회를 끊임없이 침입했지만 많은 수의 침략자들은 전리품을 챙긴뒤 돌아갔고, 간혹 몽골족과 같이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오리진>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몽골족의 침탈이 만든 결과이다. 몽골족이 빠른 속도로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동시에 막대한 사회적인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몽골족과 함께 퍼 저나 간 흑사병에 의해 유럽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며 동시에 봉건주의의 기반을 흔들며 유동적인 사회를 만들었고, 중앙아시아의 여러 제국과 국가를 함락시키면서 주요 상업 중심지의 대부분을 유럽이 차지해 버려 수많은 부와 권력을 차지했다.

지역마다의 특색은 왜 서로 다른것이지?

수많은 여행을 다닌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각 나라의 건축물들과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저런 멋진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게 되었을 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오리진>에서는 이러한 각 나라의 풍경들은 결국 그 지역에 조성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시골 풍경은 잉글랜드 동부와 노르망디 지역의 모습인데, 이 곳은 주로 백악기에 생성된 퇴적층들이 주로 분포하는 지역이다. 백악은 무르고 쉽게 바스러지는 암석이라 건축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의 모습은 대부분이 목재 골조에 갈대나 밀짚으로 지붕을 얹는 건물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고,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영국의 시골 모습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판의 활동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인 각 지역의 지질의 상태는 근대에 들어와서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863년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런던에 건설되었다. 또한 런던 북부는 지하철망이 잘 발달하였지만, 반대로 남부를 지나는 노선은 별로 없다. 이 또한 지질 상태에 영향을 받은 것인데, 런던은 오래전에 따뜻한 바닷물이 함몰지역으로 흘러들어왔을 때, 점토층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런던의 지질층은 높은 건물을 세우기엔 부적합하지만, 터널을 파기에는 아주 적합한 지역이 되었고, 이로 인해 최초의 지하철이 런던에 탄생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놀랍게 발전한 과학기술을 통해 고대로부터 축적되어온 판의 활동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오리진>에서는 아직도 우리는 지구의 판이 만들어 놓은 환경 아래서 살아가고 있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2016년 11월에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 또한 각 주의 투표 결과를 보면 공화당을 지지한 지역을 살펴보면 7500만 년 전의 백악기 암석층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16년도 미국 대선의 투표 결과와 백악기의 암석층의 모습

 

정리

루이스 다트넬의 <오리진>은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맘먹는 책이라는 서평이 많이 보였다. 앞선 두 책을 완독 하지는 못한 내가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오리진>에서는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들을 지구의 판의 활동의 시각에서 파헤쳐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앞서 정리한 인류가 어떻게 지능을 진화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나, 다양한 매체에서 들려주기만 한 유목민족의 역사적인 이야기, 그리고 막연히 멋진 건축물이라고 생각했던 각 나라의 풍경들에 대해서 판의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 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난이도가 높은 책이라 일주일 내내 읽어 간신히 서평으로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뿌듯함은 배가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