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남독]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삼심일 2021. 1. 14. 23:42
노인과 바다
국내도서
저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 김욱동역
출판 : 민음사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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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군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내기를 요청했다

"단어 여섯 개로 단편 소설을 지어서
사람들을 울릴 수 있다면 당신이 이긴 거요"

헤밍웨이는 내기에서 이겼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아이 신발 팝니다. 한번도 안 신었어요)

나는 이 일화로 헤밍웨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접했었다. 단 6개의 단어만으로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 오히려 이런 인식 때문에 헤밍웨이의 소설은 손대는 것 조차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었다. 여러 편의 헤밍웨이 작품 중 내가 그나마 알고 있던 것은 <노인과 바다>였는데, 제목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인식까지 흥미롭다기 보단 고전적이고 예술성에 치우친 작품 같았다. '노인과 바다'라니, 쭈굴쭈굴하고 시커먼 어부인 노인과 그저 바다라니. 마치 정철의 사미인곡 처럼 뜻 모를 이야기만 엄청난 메타포와 함께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소설 같았다. 그저 심심풀이로 북클럽을 도전했는데 마침 주어진 책 중 하나가 [노인과 바다]였기 때문에 읽어보았는데, 앞서 말한 편견들을 갖고 있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노인과 바다>는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실 이 책은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끌어잡는 책은 아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실속 있고 절제된 표현 방식"(위키백과)을 통해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왜 홀로 바다로 나갔는지, 그가 마주친 사건에서 왜 그렇게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지에 대한 일종의 빌드업하는 과정이다. 이런 빌드업 과정이 끝나고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홀로 바다로 나가 85일째 되는 "운수 좋은 날" 엄청난 물고기와 마주치게 된다. 헤밍웨이의 표현 방식은 낚시줄에 걸린 보이지 않는 물고기와 산티아고 할아버지와의 사투를 엄청 긴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로 만들어 주었고, 이는 어지간한 스릴러 소설만큼이나 내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들었다. 

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해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머리와 등은 짙은 보라빛이었고, 배에 있는 넓은 줄무늬가 연보라빛으로 빛났다. 옆구리는 야구 방망이 처럼 길고 끝이 쌍날칼처럼 뾰족했다.

그러나 놈은 잠깐 물 밖으로 전신을 드러내 보이더니, 다시 잠수부처럼 물속으로 유유히 들어가 버렸다. 노인은 고기의 커다란 낫날 같은 꼬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줄이 재빨리 풀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 배보다 2피트나 길구나!"

마침내 마주친 그 녀석의 모습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예상대로 85일째 되는 운수 좋은 날에 정말로 대단한 물고기를 잡게 된 것이다. 이후 이야기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아직 초보 독서가이지만, 이 책의 대단함은 결코 나만 느낀 것은 아니고 그 대단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직접 이야기를 읽어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언급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꿈이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왜 과거에 있었던 사자에 대한 꿈을 계속해서 꾸게 되는 것일까는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아직 초보 독서가라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노인과 바다>를 읽고 다른 사람의 생각들이 궁금해 찾아본 내용 중 고우영 화백의 <서유기>에서 등장하는 용왕이 쓴 독후감이 인상깊어 인용하려 한다.

바다와 노인을 읽고 나서

용감한 다랑어(Tuna)의 투쟁기이다.
작가는 그 다랑어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은 것을 쓰고 있다.
늙은 어부는 다랑어의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작가는 하나의 중요한 과실을 범하고 있다.
상어를 나쁜 고기로 표현한 것이다.
상어도 역시 내가 다스리는 어족 아닌가?
전체적으로 바다와 물고기의 생리를 사실과 맞게 표현한 것만큼은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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